건강생활

나이 들면 폐에서 '이것'이 급증?

기사입력 2025.09.09.오후 05:27
 매년 겨울 찾아오는 불청객 독감(인플루엔자)이 유독 고령층에게 더 가혹하고 치명적인 이유를 설명하는 핵심적인 분자 메커니즘이 세계 최초로 규명됐다. 이는 전 세계적인 고령화 추세 속에서 노년층의 건강을 위협하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맞설 새로운 치료 전략의 문을 활짝 연 획기적인 발견으로 평가받고 있다.

 

중국농업대학교의 리우 진화 교수 연구팀과 영국 노팅엄대학교 공동 연구팀은 고령자가 인플루엔자 A 바이러스(IAV, 흔히 A형 독감으로 불림)에 감염되었을 때 왜 더 심각한 증상을 겪고 사망률까지 높아지는지에 대한 오랜 의문을 분자 수준에서 풀어냈다고 8일(현지시간) 세계적인 학술지 '미국 국립과학원회보(PNAS)'를 통해 발표했다.

 

그동안 의료계는 고령층에서 인플루엔자 발병률과 그로 인한 중증화율, 사망률이 현저히 높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지만, 노화 현상과 인플루엔자 증상의 악화 사이를 잇는 명확한 분자적 연결고리를 찾아내지는 못해 예방과 치료에 한계가 있었다.

 

연구팀은 이 미스터리를 풀기 위해 쥐 노화 모델과 실제 인간에게서 기증받은 폐 조직 절편을 활용하는 다각적인 연구를 설계했다. 이를 통해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감염의 중증도가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면밀히 추적 조사했다.

 

그 결과, 연구팀은 결정적인 단서를 찾아냈다. 바로 '아포지단백질D(Apolipoprotein D, 이하 ApoD)'라는 특정 단백질이 노화 과정에서 폐 내부에 급격히 증가하며, 이것이 인플루엔자 감염 시 광범위한 조직 손상을 유발하고 우리 몸의 항바이러스 반응을 무력화시키는 '주범'이라는 사실을 규명한 것이다. 실제로 65세 이상의 인간과 21개월 이상의 고령 쥐의 폐 조직 및 혈청에서는 젊은 개체에 비해 ApoD 수치가 눈에 띄게 증가해 있었다.

 


ApoD의 파괴적인 역할은 구체적이었다. 이 단백질은 세포의 생명 활동에 필수적인 소기관인 '미토콘드리아'를 직접 공격해 분해를 유발했다. 미토콘드리아는 단순히 세포의 '에너지 공장'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라, 바이러스가 침투했을 때 면역계의 1차 방어 신호탄과 같은 '인터페론' 단백질의 생성을 유도하는 매우 중요한 임무를 수행한다. 인터페론은 바이러스에 감염된 세포에서 분비되어 주변 세포들에게 위험을 알리고 방어 태세를 갖추게 함으로써 바이러스의 확산을 막는 핵심적인 항바이러스 물질이다.

 

결론적으로, 노화로 인해 급증한 ApoD가 미토콘드리아를 파괴하면서 인터페론 생성 시스템에 심각한 고장을 일으키고, 이로 인해 우리 몸의 선천적인 항바이러스 면역 기능이 크게 저하되어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게 되는 것이다.

 

연구팀은 이 가설을 증명하기 위해 결정적인 실험을 진행했다. 유전적으로 노화가 진행된 쥐의 체내에서 ApoD를 제거하자,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감염시켜도 증상이 중증으로 악화하는 현상이 현저히 줄었으며 생존율 또한 극적으로 개선되는 놀라운 결과를 확인했다. 또한, 노화의 원인 중 하나로 꼽히는 '노화 세포'를 쥐에게서 제거하는 실험에서도 체내 ApoD 수치가 감소하며 선천적 항바이러스 면역 반응이 회복되고, 바이러스의 확산과 폐 손상이 줄어드는 것을 관찰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ApoD라는 단백질이 고령층의 인플루엔자 감염과 중증화를 막을 수 있는 매우 유망한 '치료 표적'임을 명확히 시사한다. 연구팀은 "ApoD의 활동을 억제하는 방식의 치료제를 개발한다면, 고령층이 독감에 걸리더라도 심각한 폐렴이나 합병증으로 진행되는 것을 막고 중증도를 완화할 수 있는 새로운 길이 열린 것"이라고 연구의 의의를 밝혔다.

 

 

 

지금 뜨는 영상